누워서 아기고양이와 놀기. 한마리는 가슴 위에서 잠들었다.
얍!
예쁜 게 좋아요!
+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땐 기분 좋죠. 사람들도 웃어주고.
하지만 사건 사고가 생기고서야 남는 게 있었다. 에너지?가 이상한 쪽으로 엇밀려 나갓을 때 그 여파가 도움이 되엇다.
아리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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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소회, 누군가에 대한 인상, 무엇에 관한 알쏭달쏭한 마음들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다시 누군가와 추억한다면 그 기분은 매우 아늑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였던가를 기억하는 것도 괜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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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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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자의식과 양분을 꺼리로 하여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뭔가를 만들고 핫하하. 별 게 없다. 정말 없어요.
셰프님과 바리스타님의 대화.
셰: 김치 그거 익은 거 갖고와.
바: 익은 건지 어떻게 알수가 있어?
셰: 보면 모르냐????
바리스타님은 러시아인입니다…한국에는 십년 사셨다 합니다만.
예전에 친구랑 밥을 먹는데 친구가 김치를 보더니 되게 실 것 같어, 하길래 응???? 한 적이 있다. 김치는 시었고, 난 눈썰미에 감탄했다. 김치경험이 길고 풍부한 사람이 보고도 그 맛을 알 것이야.
그나저나 한국에서 십년 산 바리스타님이 나보다는 한국요리와 한국의 맛?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다.
광목에
도자기?에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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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불to the 평to the 쟁쟁이가 되고 있는지는 모르겟다만 아무래도 자연?을 가까이 해야할 것 같으다… 정치나 시사 쪽 소식을 들으면 뭔가 내 태도를 가져야 하지만… 한편으론 정화가 반드시 필요함.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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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의 졸업공연에 다녀왔다. 경기민요는 기분을 화사하고 하이하게 만들어주었다. 한 곡은 가사마저, 공수래공수거인데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나비야 너도 청산가자 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 늴늬리야 니나노오~~ 막 이래. 근데 그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평소에 항상 자기의 예술?에 대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하는 모습을 간간히 보았는데 완전하게 밝고 유쾌하게 하는 것을 보니까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고 눈물이 쭈룩쭈룩 나올 것 같았다(그런 마음 든 게 내 자신이 비쳐보여서 일 수도 있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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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김에 가게 되었던 예술학교에서 본 지나다니는 학생들은 참 반짝거리고 생기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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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 길을 선택하고 배우고 단련하고 정교하게 하는 기쁨이 있고, 또 그 길에 외로움과 괴로움이 함께 하면서 그 길을 ‘내 운명’화하게 되는데. 또 그것을 사회화하는 일은 전혀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해서, 내가 판 깊이는 저만큼인데 요만큼 얕은 곳을 사람들에게 재밌고 예쁘고 반짝이게 만들어서 내놓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참, 내가 갈고 닦은 게 바래버리는게 흔하디 흔한 일인 것 같아서(너무 부정적?). 결국 우리존재 화이팅.(????)
1. 되먹임
2. 줄타기
3. 그런데 솔솔 부는 바람
생각해보앗다 ‘ㅁ’a
뭘 봐도 만드는 사람, 운영/경영하는 사람에서 생각하고 즐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휴.
요거트만들어먹기
빵굽기
식물
발레
모자만들기
야생동물보호센터 자원봉사
강원도 제주도
집 바꾸기
목공?에 손을 댄다
공부
외국어
책
수술
서예
제도
지금, 여기에서 만족하고 무엇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여 보아야한다.
그 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한다.
아무런 행동도 역사가 있고 다른 것을 향해 가고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친다.
공부가 필요하지만 귀찮다.
내 몸 하나 살리는 것도 힘든 것 같고.
능력은 모자라고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대단한 사람들은 어찌 그리 대단하게 할 수 있었지.
일정 쫓아가기도 힘들다.
그리고 항상 미룬다.
하지만 뇌용량에 예의를 갖춰서 열심히;;;
욕심이 난다. 말은 쉽다.
잘 모르는 몇몇에게 몇 마디로 그럴듯하게 비친 다음 ‘타인의 반응으로 나에 대해 어림짐작’ 하고는 만족하기가 쉽다.
그래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 도리가 없네…
왜 옛날부터 탈출에의 강렬한 욕구 같은 게 원동력이냐.
곤란하다.
아기 같기가 싫다.
잘하고 신중하고 싶다. 그게 말 뿐인 게 아니었으면 좋겟고.
-.-;;;;;
나는 떠돌아다니거나 유목민처럼은 절대 살 수가 없을 것 같은 게, 집을 너무 좋아해서이다.
여태 여기서 한 삼년 살았고 이제 계약기간이 일 년도 남지 않았다.
처음에 이 집 상태는 암담했다. 중개업자랑 집을 보러왔을때 이 집에 살던 사람은 문도 열어주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해댔는데, 자기 남편이 멋대로 집을 내놓았고 자기는 집을 보여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그랬다. 오래된 벽지와 장판에 집은 짐들로 포화상태. 그렇지만 육두문자에도 불구하고 첫 느낌이 좋았고 동쪽 남쪽 서쪽을 둘러 온 집에 창이 나있는 것이 참 맘에 들었다.
집을 계약할 때 가족과 사이가 정말 좋지 않았다. 온통 찡그린 엄마를 설득해서 집을 계약하고(전세금은 부모님의 대주었다) 온 가족이 올라와 이사를 돕는데 난 이십몇년 묵은 갈등 때문에 가족 얼굴 꼴도 보기 싫고 혼자 떨어져 있고 내 방만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아빠 속을 긁어 온 가족이 나를 비난해댔고,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정신과치료도 받게 되었다. 그때는 너무 힘들엇다 킁.
이 집에 오자마자 한동안은 이사하던 날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에 한 번 병원 다니고 간단한 알바를 하면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치료도 진행되었고 점점 여러가지 직업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움츠러든 마음은 펴지지 않았다. 도배한 지 한 달 쯤 되니까 천장의 구멍에서 전에 살던 사람이 번영시킨? 바퀴벌레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와서 천장에 붙어있었다. 그래도 이 집의 볕이 너무 좋았고 동네를 산책하고 장을 봐와서 요리하는 것이 좋았다.
여름에는 길에서 아기고양이를 만나 데려왔다. 미뇽이라고 부르면서 함께 있으니 다행스러웠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매일 속삭여주었다.
여름과 겨울을 집에서 나는 것은 힘들었다. 꼭대기층이라 밤이 되어도 열이 식지 않아 후끈거렸고 겨울엔 가스비가 이십몇만원이 나와도 늘 실내온도가 18도를 밑돌았다. 어디 피신이라도 가 있어야 했고 밤엔 겨우 잠을 청했다. 그래도 집이 별로 싫지는 않았는데, 일단 내가 선택한 집이기 때문에 인지부조화-.- 그리고 이사온 첫 해의 봄을 생각하면 너무 설렜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원래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나가고 친언니가 학교때문에 이사를 왔다. 아빠가 병원을 다니느라 부모님이 집에 가끔 와서 묵었다. 스무살 이후 부모님을 그렇게 자주 만난 건 처음이었는데 그땐 아빠가 암으로 죽는데도 별 감흥이 일지 않을 것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내 치료가 진행되어 그 즈음에 나는 나를 합리화하고 가족들을 당당하게 미워하고 있었다. 치료중이었다.
직업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변변찮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엄마와의 갈등도 줄지는 않았다.
(…뚜비꼰띠뉴)
예전에 읽은 책에선 인간/존재도 환생을 거듭하며 진화한다고 써 있었다. 어떤 존재는 미숙하기 때문에 그의 생에는 조금 밖에 내어 놓을 수가 없고 거듭 진화한 존재는 세상에 많이 주고 간다는 얘기이다. 존재들에 대해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면 내가 작년에 만나 잠시 연을 맺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고양이 또뇽이는 참으로 진화해 온 존재일 것이다. 강했고 환경에 별 거스름이 없고 사랑을 많이 주었다. 또뇽이가 스쳐간 후 많은 사람들이 변했다. 세상에 이로운 쪽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Source : catscientists)